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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보기] [취미,문화][독서 소모임 #3] 2019년의 소확행(小確幸), 하루키의 소확행

2019.05.19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의 시대입니다. 서점가에는 보노보노와 곰돌이 푸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말하고 있으며, 광고 마케터는 (소)비는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을 만들어내며 개인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확행이라는 말을 하며 물건을 쌓아 올릴 때마다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고, 소소한 삶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말은 어쩐지 멀게 느껴집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걸까요? 우리의 소확행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면 소확행은 뭘까요? 아니 누가 만든 단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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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 에세이가 실린 랑겔한스섬의 오후. 우리나라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3으로 출판되었다>

 

소확행이라는 단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3 –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으로 만든 단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한창이던 1986년에 나온 이 책에서, 하루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자신의 소확행을 말합니다.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기는(小) 하지만 확(確)고한 행(幸)복의 하나(줄여서 소확행)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팬티와 런닝셔츠를 사서 모으는 취미가 작지만 확고한 행복이고, 그게 우리가 흔히 쓰는 소확행의 어원이라니? 조금 의아하기도 하고 하루키라는 작가의 비밀스러운 일면을 본 느낌입니다. 그러면 속옷을 사서 모으는 “속”확행이 우리가 널리 쓰는 소확행의 어원이라는 걸까요? 더 질문이 늘어난 느낌입니다.

이렇게 불어난 대답을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찾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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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1997년에 출판된 책으로, 하루키가 1994년부터 1995년까지 <SINRA>라는 잡지에서 연재한 기고문을 엮은 책입니다. 그 당시 하루키는 미국 케임브리지에서 체류하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느낀 생활상과 느낌(주로 이국에서의 낯선 경험들과 고통)을 <이윽고 슬픈 외국어>라는 책을 통해 진지하게 풀어냈었습니다.

하지만 SINRA라는 잡지에 기고문을 쓰던 1994년부터 그는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었고, 소설에 집중하고 싶었던 까닭에 가볍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고문을 작성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자신의 기고문을 엮어 나온 책이 바로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입니다. 이 책에서의 하루키는 이전에서의 글과는 다르게, “미국이라는 땅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이방인 하루키”가 아닌 “마라톤과 소설, 여행과 고양이를 좋아하는 작가 하루키”의 모습을 한편의 그림일기처럼 장난스러우면서도 편안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의 서두가 바로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문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뭐 이렇게 책의 서두를 시작하는 것도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편지가 아니니까요), 아무튼 덕분에 나는 꽤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10p)”

그렇게 시작되는 그의 이야기는 한편의 여행에세이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보스턴 마라톤의 이야기와 자신의 소설에 대한 성찰, 몽골여행 중 양고기를 먹고 냄새를 지우기 위해 도수가 높은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가 의식을 잃어버린 이야기. 그가 미국에서 타고 다녔던 차에 대한 이야기와, 차량 도난사고로 본인이 겪은 당황스러운 경험까지. 중간중간에 그가 직접 찍은 사진과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을 보다 보니 저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여행이야기에 집중하는 관객이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자신의 일상과 삶, 행복을 얘기하던 하루키가 다시금 책에서 소확행을 말하는 부분에서, 가장 처음에 던진 “지금의 소확행은 과연 괜찮을까?”라는 부분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습니다. 하루키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구두쇠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136p)”

이 부분이 바로 책의 제목인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제목을 설명해주는 구절이자, 2019년에서의 소확행이 가진 공백을 채워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규제라는 자신의 철학을 견지한 채로 일상속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들. 책에서 하루키는 은유적으로 (그리고 고양이를 통해서도) 그런 삶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책을 읽고나서 제가 앉은자리를 한번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여백없이 꽉꽉 채운 공간배치와 물건들. 자기 규제가 아닌, 쌓아올리는 소확행에서 오히려 공허함을 느낀 게 아니였을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이 소확행의 늪(?)에서 헤엄치셨던 분이라면 이번기회에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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